내일을 그리는
경주 사람

나는 항 개라도 더 배우고 싶어
여 오는 게 좋아!

경주행복학교 94세 박달수 어르신

경주행복학교는 1997년부터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이 한글을 배우고,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문해교육기관이다. 17년 동안 학교에 다니며 지난 2월 중학 과정을마친 뒤에도 여전히 배움을 이어가고 있는 94세 박달수 어르신을 만났다.

임숙영 사진 최다영

경주행복학교 94세 박달수 어르신
부끄러버서 학교 다닌다 말도 몬했어

고급반 수업이 한창인 교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작은 책상마다 어르신들이 나란히 앉아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실 안에는 따라 읽는 목소리가 잔잔히 함께했다. 권희숙 선생님은 아침 8시 50분이면 늘 오늘의 예습을 준비한다. 자꾸 깜빡 잊어버리는 어르신들을 위해 큰 글씨로 수업 안내 문자도 보내고,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다시 짚어준다. 어르신들은 문장 속에서 의미가 통하는 글자를 찾고, 동그라미를 치고 따라 써 내려간다. “늙어서 무슨 공부고 싶어 부끄럽기만 했제.” 공책을 보여달라고 하자 “아이고 부끄러버서… 안돼.” 하시며 얼른 덮으신다. 살짝 들여다본 공책에는 꾹꾹 눌러쓴 글씨마다 배움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울 선생님 보러 오지, 맨날 사랑한다꼬 그라제

아흔넷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박달수 어르신의 표정은 맑고 환하다. 지난 2월, 17년 만에 중학교 과정을 졸업했다. 17년간 일주일에 세 번, 성건동에서 학교까지 날씨가 좋으면 보행기를 밀고 천천히 걸어왔고, 날이 궂으면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어르신들도 있지만 박달수 어르신은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학교는 계속 오고 싶었다. 사람을 만나고, 글을 배우고,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어르신의 속내를 알게 된 선생님은 “오시면 되지요! 뭔 걱정이니껴”라고 등을 토닥여주셨다. 수업이 끝나자, 박달수 어르신은 머플러 사이로 숨겨둔 손을 꺼내 작은 하트를 만들어 보이신다.

세 다리 백 년 학생 내 나이 몇이냐
맨몸도 천근만근이지만 책가방 메고
느린 걸음에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세상을 만나는 것이고 제일 행복한 길이오

– 시 <백 년 학생> 중에서

모자 쓰기를 좋아하는 멋쟁이 박달수 어르신,
고운 주름 사이로 번지는 웃음을 보고 있자니
경주행복학교를 상징하는 분홍 패랭이꽃이
떠오른다.

17년 동안 꾸준히 학교에 다니며 중학 과정을 마친
지금도 “내 힘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배우고 싶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도 환하게 웃으며 공부를 이어가는 백 년 학생
박달수 어르신. 그 웃음이 오래 머무는 교실을
뒤로하고, 햇살 비치는 시장 골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본다.

모자 쓰기를 좋아하는 멋쟁이 박달수 어르신, 고운 주름 사이로 번지는 웃음을 보고 있자니 경주행복학교를 상징하는 분홍 패랭이꽃이 떠오른다.

17년 동안 꾸준히 학교에 다니며 중학 과정을 마친 지금도 “내 힘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배우고 싶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도 환하게 웃으며 공부를 이어가는 백 년 학생 박달수 어르신. 그 웃음이 오래 머무는 교실을 뒤로하고, 햇살 비치는 시장 골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본다.

※ 학력인정과정 1주 3회 수업 / 문해과정 1주 2회 수업

손이 떨려 글씨는 잘 몬 써~ 여 오는 날만 기다려

읽고 배우는 건 여전히 즐겁지만, 이제는 손이 많이 떨려 글씨 쓰기가 쉽지 않다고 하신다. 꼭 써야 할 때면 두 손을 포개 연필을 힘껏 눌러가며 한 글자씩 적는다. “그래도 나는 행복해. 여 오면.” 어르신은 금세 환하게 웃으신다. 밤에는 자다 깨기를 반복하지만,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학교 갈 채비를 한다. 행복학교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씀하신다. 방학이 되면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박달수 어르신에게 권희숙 선생님은 “담에 만나면 이 노래 꼭 불러주세요~” 하며 작은 숙제를 내어주신다. 배우는 기쁨도, 기다리는 즐거움도 행복학교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간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 곁을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경주행복학교 교장 강석근

경북에서 가장 많은 122명의 초·중학교 학력 인증 졸업생을 배출한 경주행복학교, 내년이면 개교 30년을 맞는다. 한글을 읽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이 이곳에서 읽고 쓰기를 배우고 시를 짓고, 졸업장을 받는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해 또 다른 배움에 도전하는 어르신들도 많다.

강석근 교장은 “답답했던 세상에서 한 걸음 나와 스스로 읽고 쓰게 되었을 때 어르신들 표정이 가장 먼저 달라진다”라며 “그 변화를 지켜보는 일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문해 학교는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운영 환경은 무척 어렵습니다.”

경주시 성건동에 소재한 경주행복학교는 초등·중학 학력 인정 과정을 운영하는 평생교육기관이다. 현재 126명의 어르신이 공부하고 있고, 9명의 교사가 함께 수업을 맡고 있다. 그러나 학교 운영은 여전히 후원과 자원봉사에 기대는 부분이 크다. 지금 사용 중인 일부 교실의 임대료는 간신히 선정된 국비에 의존하고 있다. 강석근 교장은 오랫동안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 학교장을 맡은 지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교구를 마련하고 안정적으로 수업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재정 확보가 늘 고민”이라며 “무엇보다 문해교육이 개인의 노력에만 기대지 않고 국가의 법령에 의거해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늦은 나이에도 배움은 지속되지만, 국가의 지원은 아직 더디다. 문해교육 현장에서는 교사들의 헌신도 큰 몫을 차지한다. 어르신들의 학습 속도에 맞춰 교재를 다시 만들고, 수업 안내를 반복해서 전하고, 생활 상담까지 함께 이어간다. 백세시대, 경주행복학교가 어르신들의 배움을 지켜주는 공간으로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늦은 나이에 다시 연필을 쥔 어르신들에게
학교는 단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과 다시 이어지는
삶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학교안내: 054)773-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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