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영광이
땅의 노래

솔그늘 따라, 경덕왕릉 가는 길

“군은 아버지요, 신은 어머니이며, 백성은 어린아이라.” 백성을 위하는 것이 곧 다스림이라 노래하던 시대,
경덕왕 24년. 충담사가 바친 “안민가”의 뜻은 솔그늘 아래 고요히 남아 있다.

임숙영 사진 박진형

하늘에서 바라본 경주 경덕왕릉

하늘에서 바라본 경주 경덕왕릉

✻ 남산 너머, 안쪽의 마을

경주 남산 남쪽 자락으로 길을 내리면, 이름부터 고요한 마을 하나를 만난다. 내남면. 말 그대로 ‘남쪽 안쪽’에 자리한 땅이다. 경주 시가지의 서남부,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예부터 남산 너머 깊숙이 들어온 마을이라는 뜻에서 ‘내남(內南)’이라 불렸다. 도시의 바깥이면서도 또 다른 중심, 바람과 물길이 머무는 자리였다. 지금도 형산강 상류의 물길과 남산 자락의 능선이 맞물리며, 옛 경주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 구릉 위에 앉은 왕의 자리

경덕왕릉 가는 길은 낮은 구릉과 솔숲이 함께한다. 농로를 지나 솔숲에 들어서면 머릿속까지 맑게 하는 솔향이 반갑다. 경덕왕릉은 통일신라 제35대 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능은 평지에 드러나기보다 완만한 구릉 위에 앉아 있다. 멀리서 보면 산과 능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봉분은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스며든다.

경주 경덕왕릉

경주 경덕왕릉

경주 경덕왕릉 가는 길

경주 경덕왕릉 가는 길

경주 경덕왕릉 십이지신상

경주 경덕왕릉 십이지신상

✻ 경덕왕과 충담사 이야기

경덕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스물네 해 되던 봄이었다. 궁궐 뜰에는 때때로 신령이 나타난다는 기이한 일이 이어졌고, 이를 예사롭지 않게 여긴 왕은 삼월 삼짇날 귀정문 누각에 올랐다. 신하들에게 지위와 깊이를 지닌 승려를 찾아오라 명했으며 남루한 옷차림에 앵두나무 통을 멘 한 승려를 보자 크게 기뻐하며 불러들였다. 충담이라 밝힌 그는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에게 차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이라 했고, 왕의 청에 따라 차를 달여 올렸다. 그 향은 깊고 그윽해 일찍이 맛보지 못한 것이었다. 왕은 그가 기파랑을 노래한 인물임을 알아보고 다시 한 수를 청했고, 마침내 ‘백성을 편안케 하라’는 뜻의 노래를 지어 바치게 했다. 훗날 “안민가”라 불린 이 노래는, 다스림이 아닌 보살핌의 언어로 나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 돌에 새긴 수호의 형상, 십이지신상

왕릉 앞에는 안상문을 새긴 높은 석상이 놓여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무덤의 특징이 또렷해진다. 둥글게 쌓은 봉분 아래로는 둘레돌이 단단히 둘려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둘레돌은 목조건축물의 돌기단을 닮은 구조로 되어 있는데 바닥돌 위에 면석을 두르고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세웠다. 탱석에는 두 칸 건너 하나씩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신장 형상의 조각들은 능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둘러서 있다. 왕릉 여러 곳을 돌아보아도 유독 눈길이 머무는 부분이다. 돌에 새긴 형상은 천년의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솔숲이 감싸안은 시간

경덕왕릉 가는 길은 무엇보다 편안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왕릉을 감싸듯 솔숲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지만, 그저 평화롭다. 바람이 불면 솔향이 먼저 흐르고, 빛은 가지 사이로 잘게 부서진다. 능 위의 풀밭은 여름의 초록으로 눈부시다. 문헌에 따르면 경덕왕의 장지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전해진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 묻혔다가 옮겨졌다는 이야기도 있어 현재의 능이 정확한 왕릉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둘레돌과 십이지신상을 마주하는 순간, 천년 전의 왕과 나라를 그려보는 시간은 충분히 소중하다.

✻ 길목에서 만나는 작은 흔적들

왕릉을 돌아 나오는 길,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 솔숲 사이로 난 좁은 흙길을 천천히 걸으면, 이따금 작은 돌 조각이 눈에 밟히기도 한다. 경덕왕 시대는 신라 문화의 절정기로 꼽힌다. 불국사와 석불사가 세워지고, 월정교가 놓이고, 성덕대왕신종의 주조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화려한 치적 뒤로, 왕의 마지막 자리는 이렇듯 조용한 솔숲 안에 있다. 번화했던 왕경과 이 고즈넉한 능사이의 거리가 어쩐지 지금의 경주와 내남면 사이의 거리처럼 느껴진다. 안쪽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와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경주 경덕왕릉

경주 경덕왕릉

✻ 솔그늘 아래 이어지는 길

이 길은 단순히 왕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다. 구릉을 따라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솔그늘 아래 이어지는 고요한 시간, 그리고 돌에 새겨진 상징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신라의 마지막 결을 전한다.
내남면이라는 이름처럼, 바깥에서 한 걸음 더 들어온 자리. 그 안쪽 깊은 곳에서 마주하는 왕릉은 화려하기보다 담담하고, 웅장하기보다 그저 소박하다. 여름의 솔그늘 아래, 경덕왕릉을 찾는 길은 그저 조용히 이어진다.

경주 경덕왕릉

신라 제35대 경덕왕(재위 742~765)은 성덕왕의 아들로 이름은 헌영이다. 봉분은 둥근 형태이며, 주위에는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둘레돌을 둘렀다. 경덕왕은 행정구역과 관진 체계를 정비하는 등 제도 개편을 추진했으며, 이 시기에 불국사와 석불사 창건과 월정교 건립이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경주 경덕왕릉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산7

우리가 만드는 경주, 함께 여는 미래우리가 만드는 경주, 함께 여는 미래
경주의 중심, 황오동경주의 중심, 황오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