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그리는
스토리 경주
신라의 얼을 지키고, 경주의 뿌리를 잇다
경주 고고학의 선구자, 석당 최남주 선생 이야기
수많은 신라 유산을 발굴·보존하며 오늘날 문화 도시 경주의 기틀을 다진 사학자 석당 최남주 선생(1905~1980).
가장 엄혹했던 시절 가장 찬란한 사명과 열정으로, 경주 산야에 흩어져 있던 민족의 문화와 정신을 지키고 수습한 문화 수호자이자 애국지사다.
글 류정헌 사진 경주시 제공

1965년 파석불두를 어루만지고 있는 최남주 선생(경주 박물관 소장)

1967년 최남주 고가에서, 신라문화 외국인 학자들
경주의 산야를 누빈
역사 배달부
경주시 충효동 김유신 장군 묘 입구에는 작지만 강인한 기개가 느껴지는 기념 공원이 있다. 경주 문화유산 발굴·보존의 선구자 석당 최남주 선생을 기리기 위한 ‘석당공원’이 그곳이다. 2001년 이곳에 선생의 추송비가 세워졌을 때, 언론인 고(故) 이규태 씨는 그를 일컬어 ‘무너진 신라의 탑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흙 밑 뒤져 청태 낀 기왓장과 비석 조각을 주워 신라의 향기를 온누리에 배달한 역사 배달부’라 칭송했다. 신라의 얼을 찾아 평생 경주 곳곳을 누비며 신라의 얼을 건져 올린 선생의 발자취는 곧 현대 경주 고고학의 개척사 그 자체였다.
암흑기 속 지켜낸
민족의 자존심
경주시 충효동 김유신 장군 묘 입구에는 작지만 강인한 기개가 느껴지는 기념 공원이 있다. 경주 문화유산 발굴·보존의 선구자 석당 최남주 선생을 기리기 위한 ‘석당공원’이 그곳이다. 2001년 이곳에 선생의 추송비가 세워졌을 때, 언론인 고(故) 이규태 씨는 그를 일컬어 ‘무너진 신라의 탑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흙 밑 뒤져 청태 낀 기왓장과 비석 조각을 주워 신라의 향기를 온누리에 배달한 역사 배달부’라 칭송했다. 신라의 얼을 찾아 평생 경주 곳곳을 누비며 신라의 얼을 건져 올린 선생의 발자취는 곧 현대 경주 고고학의 개척사 그 자체였다.
재야의 거인이 일궈낸
고고학의 기적
재야 사학자인 선생이었지만, 유적과 현장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 깊고 넓은 식견을 지닌 독보적 존재였다. 1932년 ‘원원사지 석탑’을 복원하고, 1934년 연대상 진흥왕 순수비 다음으로 오래된 비인 ‘남산신성비’ 최초로 발견했으며, 1938년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과 함께한 동해구 답사를 통해 문무대왕 수중릉 발견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렇듯 그가 수습하고 고증한 유물과 유적들은 신라사 연구의 결정적 지표가 되었다. 선생의 헌신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더욱 빛났다. 어려운 형편에도 사재를 털어 ‘무열왕릉 비각’과 ‘석탈해왕릉 비석’을 건립하였고, 1961년 일명 ‘신라의 미소 불상’이라 불리는 신라 최대 석불상 두부 발견, 1970년 ‘원광법사 부도탑’과 1971년 삼국사기에 기록된 ‘열박산 유적지’를 발견하는 등 노년에 이르러서도 ‘살아있는 역사 배달부’로서의 사명을 쉼 없이 이어갔다.

1968년 경주 인왕동 고분발굴 축문
석당 선생이 평생을 바쳐 지킨 것은 잃어버릴 뻔했던 신라의 얼이었고, 오늘날 경주를 지탱하는 문화와 역사의 뿌리였다. 이름 없는 파수꾼을 자처하며 경주라는 거대한 박물관을 지켜온 선생의 생애는 오늘의 경주를 있게 한 가장 깊고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