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경주
경주 산책

낭산을 벗 삼아, 선덕여왕릉 가는 길

선덕여왕이 “내가 죽거든 도리천에서 장사 지내달라”라고 유언하자 신하들은 당황했다고 한다. 사실 도리천은 불교에서 수미산 꼭대기에 위치하는 이상세계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여왕은 조용히 낭산의 남쪽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한마디가 천 년 넘게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표지판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논두렁 옆길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금세 숲이 시작된다. 낭산 가는 길이다. 자연스럽게 뻗은 구불구불한 소나무는 저마다 모양을 뽐내고, 바람 한 줄기는 그저 가지런하다.

임숙영 사진 최다영

선덕여왕릉
THE PATH TO THE TOMB OF QUEEN SEONDEOK

유유자적, 신들의 언덕

경주 낭산 일대는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다. 누에고치처럼 남북으로 길게 누은 이 낮은 구릉은 신라 실성왕 12년(413)부터 신성하게 여겨져 성역으로 보존되어 왔다. 삼국사기에는 낭산에 구름이 일고 향기가 퍼져나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자, 왕이 “신령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니는 곳”이라며 나무 한 그루도 베지 말라 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로도 낭산은 나라에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왕실이 기도를 올리러 찾았던 곳이다. 7세기 이후에는 불교의 성산으로 자리 잡으며 왕실의 소망을 담는 땅이 되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선덕여왕의 예지력

<삼국유사> 권 1 <선덕여왕 지기심사> 조에는 세 가지 일화가 전한다. 당 태종이 진홍, 자색, 백색의 모란 그림과 씨앗 3되를 보내오자, 선덕여왕이 “이 꽃에는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꽃이 피고 질 때까지 향기는 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선덕여왕 5년(636) 궁성 서쪽 영묘사 옥문지에 수많은 개구리가 모여 밤낮으로 울어대자, 여왕은 군사를 보내 여근곡에 적병이 매복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토벌을 명했다. 그 결과 백제군을 크게 물리쳤다. 또한 자신의 죽을 날과 묻힐 곳을 미리 일러두었다는 이야기는 선덕여왕의 예지력이 얼마나 신묘했는지를 전한다. 한때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로 많은 발길이 이어졌던 선덕여왕릉은 지금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왕들이 잠든 뜨락

대숲이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사천왕사지는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탁 트인 공간에 시원한 개방감을 주는 사천왕사는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뒤 문무왕이 신성한 숲 신유림에 세운 호국 사찰이다. 문무왕 19년(679)에 선덕여왕릉 아래에 사천왕사가 완성되자,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불경의 가르침대로 여왕의 능이 비로소 도리천에 놓이게 되어 유언이 지닌 깊은 뜻을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선덕여왕(재위 632~647)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딸로,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재위 15년간 왕권을 불교의 권위로 뒷받침했으며 삼국통일의 초석을 세운 선덕여왕의 능은 주인이 명확히 밝혀진 몇 안 되는 능이다. 빽빽한 소나무 숲 한가운데 자리한 덕에 왕릉까지 가는 길이 고즈넉하고 분위기 있다.

호국의 땅, 소망의 공간

데크 길을 따라 걸은 후 완만한 정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솔숲 사이로 단아한 원형 봉토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별다른 장식 하나 없이 흙으로만 덮인 봉분이지만, 1400년 가까운 세월이 무색할 만큼 단정하다.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봉분 주위를 천천히 걷는다. 어떤 화려함도 장식하지 않은 선덕여왕릉은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와 왕들의 뜨거운 소망이 함께하는 곳이다. 선덕여왕릉을 비스듬히 바라보며 나무 등걸에 기대어 본다. 고요하고 평온한 세계가 나를 맞이하는 기운에 잠시 눈을 감아본다. 소나무 사이로 하늘은 그저 맑고 푸르다. 양지바르고 포근한 이 자리가 도리천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낭산 기슭에 있는 신라의 절터

낭산 기슭에 있는 신라의 절터 <경주 사천왕사지>

문무왕의 화장터로 전해지는

문무왕의 화장터로 전해지는 <능지탑지>

경주 선덕여왕릉

경주 선덕여왕릉

경주 선덕여왕릉

경주 선덕여왕릉

솔숲이 이어지는 길

선덕여왕릉을 등지고 구릉을 오르며 솔숲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면 길은 낭산의 서쪽 중턱을 향해 스르르 내려간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일렁이
고, 솔바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왕의 봉분을 돌아 나온 길이 이리도 고요하다니. 발밑의 솔잎 쌓인 흙길은 걸음걸음마다 폭신폭신하다. 야트막한 들길을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면 능지탑지와 마주한다. 능지탑지는 문무왕릉비의 일부가 발견된 곳으로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되고 있다. 그저 조용한 솔숲 아래 천 년의 이야기를 층층히 쌓아두고 있는 낭산에서는 소나무의 부드러운 바람이 지나간다.

경주 선덕여왕릉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무덤이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다. 선덕여왕은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목탑 등을 세웠으며, 김유신,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경주 선덕여왕릉 경주시 보문동 산 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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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체험숲이 교실이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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