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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한국관광의 메카 “Beautiful Gyeongju”가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용담정  #수운 최제우  #동학  #경주 역사 여행 
기본정보
  • 주소경북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산 63-1
  • 전화번호054-745-5345
요약정보
수운 최제우가 태어나고 동학을 포교하다가 뼈를 묻은 곳
  • 상세정보
    경주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현곡면 가정리 일대는 조선 후기 민심을 사로잡은 민족 종교 ‘동학’의 발상지이다.

    이 구미산 기슭에 있는 용담정은 “사람마다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이 곧 한울”임을 깨달아 천도교를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태어나고, 동학을 포교하다 뼈를 묻은 곳으로 민족 종교인 동학의 발상지라 하여 1975년에 성역화 작업을 통해 천도교 수련 시설로 정비되었다.

    최제우가 태어난 당시 국내는 관리들의 폭정에 의한 과도한 세금과 천재지변, 대외적으로는 영토 확장을 위해 동양에 진출한 서양 세력과 충돌하며, 백성의 불안과 고통이 극에 달해 있었는데, 몰락한 양반 가문의 후예로 태어난 최제우는 유교경전과 역사서를 통해 학문을 익히면서 격변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울님의 뜻을 알아내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게 된다.
    결국, 최제우는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 양산 천성산 암굴에서 수도하고 도를 갈구하여 1860년 4월 5일 한울님으로부터 인류 구제의 도인 '무극대도(無極大道, 끝없이 훌륭한 진리)'를 받게 되는데, 처음에는 도의 이름을 동학이 아닌 '무극대도'라고만 하였다.

    그리고 1861년부터 경주를 중심으로 포교를 시작하여 많은 사람이 무극대도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전국으로 교세를 확장해 나가던 중, 1862년 1월경에 지은 논학문에서 처음으로 무극대도는 천도(天道)이며 천주교를 서학이라 하는 데에 맞서 우리의 도를 밝힌다는 뜻으로 ‘동학’이라 천명하였다. 한편, 그동안 동학의 교세확장을 지켜보던 조정은 동학을 민심을 현혹하는 ‘사술’이라 규정하고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고, 결국 쫓김을 당하던 최제우는 제자 최시형을 2대 교주로 임명하고 1863년 11월 체포되어, 이듬해 3월 ‘바르지 못한 도로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대구에서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아 뭇사람에게 본을 보이게 하는 효수형을 당한다.

    교주 최제우는 동학을 포교한 지 3년 만에 잡혀 죽고, 제자들은 유배되었으며, 2대 교주 최시형도 끝없이 쫓김을 당하면서 동학의 활동은 위축되었지만, 가난하고 핍박받은 사람들은 ‘신분 평등’을 주장하는 동학에 크게 이끌리게 되어 1894년 우리나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동학농민전쟁의 작은 물꼬를 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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