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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이후의 천년 경주 '조선시대의 경주'

한국관광의 메카 “Beautiful Gyeongju”가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서라벌에서 동경으로, 그리고 경주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천 년의 역사를 품은 경주. 경주의 역사는 곧 신라의 역사이고 신라는 곧 경주다. 그 뿌리 위에 새로운 천년의 역사가 새겨졌다. 신라의 서라벌로부터 고려의 동경을 이어 조선의 경주까지. 지명이 바뀌듯 제각각 다른 모습, 다른 문화로 존재했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모두가 어우러진 하나의 경주로 자리하고 있다. 신라의 궁성이었던 월성 안에 조선시대의 유적 석빙고가 있듯이, 신라시대 국립대학이었던 국학이 있던 자리에 조선시대의 교육기관 향교가 자리하고 있듯이 말이다. 신라 이후의 천년 경주를 찾아 떠나는 시간, 조선시대의 경주로 시간여행을 나서 본다.
  • 여행코스 설명

    #경주당일치기여행 #조선시대의경주 #경주필수여행코스

    경주 시내권에 모여 있는 조선시대의 유적과 북부권에 모여 있는 유적을 이어 보는 코스이다. 시내권에서 북부권까지 갈 때 20-30분의 소요시간을 제외하면, 각 코스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함께 돌아보기 좋다. 시내권의 유적을 먼저 돌아보고 북부권으로 넘어가는 경로를 추천한다.
  • 코스제안

    시내권
    1경주최부자댁 2경주향교 3석빙고 4경주읍성
    북부권
    1양동마을 2옥산서원 3독락당

#1경주최부자댁

경주최부자댁 사랑채 전경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경주 최부자’의 종가댁이다. 1700년 경 건립된 고택으로 건축 당시 이웃하고 있던 향교의 권위를 해치지 않기 위해 향교보다 세 자 이상 낮게 터를 깎아내고 집을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정석적 형태이며 지어질 당시에는 99칸이었으나 현재는 큰 사랑채와 안채, 솟을대문과 곳간 등이 남아 있다. 고택의 첫인상인 솟을대문부터 겸양의 미가 보인다. 일반적인 대감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소박하고 낮은 솟을대문의 모습이다.

  • 경주최부자댁 솟을대문
  • 경주최부자댁 안채 앞 마당에 장독대들

경주 최부자 가문은 1대 최진립 장군부터 12대 독립운동가 최준 선생까지 지조와 절개, 겸손과 포용의 미덕으로 이름값을 귀하게 만들었다. 9대 진사를 배출하기도 했는데, 권력에의 탐닉을 막기 위해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는 가훈이 내려온다. 일명 ‘최부자 육훈’으로 진사 이상의 벼슬 금지를 비롯해,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 것, 과객을 후하게 대접할 것,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말 것,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할 것 등의 가훈을 지키며 올바른 부자의 정도를 걸었다.

경주최부자댁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교촌안길 27-44
  • 관람시간 : 09:00-18:00(동절기 17:00까지)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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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경주향교

경주향교 항공사진

경주 최부자댁 바로 옆에 조선시대의 교육기관 경주향교가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가 교촌(校村), 교리(校里), 교동(校洞)이라 불리는 연유도 이곳에 향교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천년의 배움터이다. 신라 신문왕 2년(682)에는 한반도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세워졌던 곳이고, 이는 고려시대의 향학으로, 조선시대의 향교로 이어졌다.
향교는 지방인재의 교육을 담당했던 교육기관을 말한다.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향교는 공립학교에 해당한다. 경주향교 건물은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3년(1600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제향공간을 다시 짓기 시작했으며, 명륜당 등 강학공간은 광해군 6년(1614년)에 짓기 시작해 원형을 복원했다. 매년 봄, 가을 전통적 유교제례의식인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또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전통혼례과정을 시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다도, 국궁, 투호 등의 전통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 경주향교 대성전 전경
  • 경주향교 추계석전대제를 하는 사람들
경주향교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교동 17-1
  • 관람시간 : 09:00-18:00
  • 관람료 : 무료
  • 문의전화 : 054 775 3624
  • 홈페이지 : http://www.hyanggy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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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주 석빙고

경주 석빙고를 좌측에서 바라 본 사진

경주최부자댁과 경주향교가 있는 교촌한옥마을을 벗어나 걸어서 5-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월성으로 향한다. 조선시대의 냉장고를 보러 가는 길. 보물 제66호로 지정된 경주석빙고는 월성 안의 북쪽 성루에 자리하고 있다. 천여 개의 돌로 만들어진 얼음 창고로, 석실은 직사각형이고 천장은 돔 형태로 올려져있으며 출입문은 남쪽에 있다. 천장에는 공기구멍이 셋 있고, 바닥은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홈을 파고 경사를 만들었다.
석빙고 출입문 이맛돌에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재신유(再辛酉) 추팔월(秋八月) 이기(移基), 개축(改築)’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영조 17년(1741)에 옮겨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출입문이 닫혀 있어 내부로 들어가 보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문 바깥에서만 석실 내부를 확인할 수 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니 서늘한 한기가 느껴져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이 나온다.

  • 석빙고 내부
  • 경주 석빙고를 우측에서 바라 본 사진
석빙고 관람정보
  • 위치 : 경주시 인왕동(월성 내)
  •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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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경주읍성

멀리서 바라본 경주읍성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독락당이 모여 있는 경주 안강으로 가기 전, 꼭 들러 가야 할 곳이 있다. 신라 이후의 천년 경주를 상징하는 주요 유적인 경주읍성이다. 신라시대에는 월성이 중심이었다면 고려 이후에는 경주 읍성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고려와 조선에 이어지기까지 행정, 생활, 군사기능이 모여 있던 경주의 심장부였다.
고려시대에 처음 축조된 이래, 조선시대에 여러 번 고쳐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복원된 모습은 조선 영조 21년(1745)에 중수한 모습이다. 영조 때 중수한 경주읍성은 성곽 둘레가 2.3km에 달했고, 동서남북에 성내로 통하는 사대문이 자리했다고 전한다. 사대문은 모두 소실되었는데, 동문인 향일문은 최근 복원하였다.

  • 향일문 전경
  • 경주읍성 야경

동쪽에 100여 미터 남짓 남아 있던 성벽을 이어 쌓고, 치성, 옹성, 동문 등을 복원해 2018년 11월 일반에 공개했다. 차차 남은 동쪽 성벽과 북쪽 성벽, 북문인 공신문까지 복원될 예정이다. 복원된 성벽과 향일문에는 야간경관조명이 설치되어 시내권 야경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또 읍성 건너편 길가에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들어서 있어 카페 한곳을 골라 잠시 여유를 가져도 좋다.

경주읍성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동문로 31
  •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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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양동마을

양동마을 항공사진

시내권에서 자동차로 20-30분을 북쪽으로 달리면 조선시대 반촌과 만난다.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로 지난 2010년 8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양동마을에 들어선다. 언덕바지 곳곳에 풍채 좋은 고택과 정겨운 초가가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주요 고택을 돌아보기 위해 마을로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고택이 있을 것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중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집, 향단이다. 퇴계 이황의 스승이자 조선 성리학의 체계를 다진 이언적 선생은 연로한 노모를 늘 걱정했는데, 왕이 집을 하사하자 어머니를 형 대신 모시고 있던 동생 이언괄 선생에게 기꺼이 집을 내주었다. 향단은 독특한 구조와 배치로 역사학자와 건축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모든 동선이 노모에게 한 달음에 닿을 수 있도록 안채 중심으로 집이 지어졌다. 사랑채의 기둥은 사찰이나 궁궐에서 쓰는 둥근 기둥을 사용했는데, 당시 사가에서는 쓸 수 없는 원기둥을 왕의 특별배려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양동마을 향단 사랑채 전경
  • 양동마을 관가정 전경
  • 언덕에서 아래로 바라본 양동마을 서백당

향단에서 왼쪽 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관가정에 닿는다. 조선시대 청백리로 알려진 우재 손중돈 선생이 분가하여 살던 집이다. 언덕바지에 자리하고 있어 사랑채의 누마루에서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가정에 이어 만날 수 있는 주요 고택은 무첨당.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이 기거하던 별당으로 사랑채의 기능이 강조된 고택이다. 이어 멀지 않은 곳에 월성 손씨의 종택 송첨종택이 있다. 사랑 대청에 걸린 편액 이름인 ‘서백당’이 더 익숙한 곳이다. 양동이 낳은 걸출한 인재였던 우재 손중돈 선생과 회재 이언적 선생이 모두 이곳 서백당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마당에는 집과 같은 역사를 가진 아름드리 향나무가 기품 있게 서 있다. 그 밖에도 경산서당, 수졸당, 심수정 등 의미있는 건축물들이 많다. 꼼꼼하게 양동마을을 탐구해보자.

양동마을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4
  • 관람시간 : 4~9월 09:00-19:00(10~3월 18:00까지)
  • 관람료 : 성인 4,000원 / 청소년, 군인 2,000원 / 어린이 1,500원
  • 문의전화 : 054 762 2630
  • 홈페이지 : http://yangdong.inv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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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옥산서원

옥산서원 전경

양동마을과 함께 둘러보면 좋은 유적이 옥산서원과 독락당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과 이어진 유적들이다. 두 곳은 멀지 않은 거리에 이웃하고 있는데, 먼저 옥산서원으로 향한다. 올해 7월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곳의 서원 중 한 곳인 옥산서원.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건립되었다. 정문인 역락문을 통해 들어가면 누각 ‘무변루’가 보이는데, 누마루를 서원 건축에 도입한 최초의 사례로 소개된다. 정면에 강당인 ‘구인당’이 있고, 좌우에 기숙공간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자리하고 있다. 구인당에는 두 개의 ‘옥산서원’ 편액이 걸려 있는데 강당 대청 전면에 있는 편액은 사액 받은 당시의 편액이고, 강당 전면에 걸린 편액은 조선 명필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강학 공간 뒤에는 이언적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을 비롯해, 신도비, 전사청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이다. 옥산서원에서는 매년 7월부터 10월까지 문화재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주말마다 다도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향긋한 차 한 잔과 함께 옥산서원에 머물러 가자.

  • 옥산서원 무변루
  • 툇마루 위 차와 떡이 담긴 쟁반
옥산서원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 관람시간 : 10:00-17:00
  • 관람료 : 무료
  • 문의전화 : 054 762 6567
  • 문화관광해설 시간: 10:30-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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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독락당

경주 독락당 계정

자연과 벗 되었기에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집,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낙향하여 7년 간 기거한 곳이다. 가옥의 사랑채를 독락당, 또는 옥산정사라 부른다. 옥산정사라는 현판은 퇴계이황의 글씨, 독락당 현판은 아계 이산해의 글씨이다. 독락당의 포인트 하나, 독락당에 딸려 있는 별당 정자인 ‘계정’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계곡의 풍광이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 또 하나의 포인트, 독락당과 계곡 사이의 담장에 살창을 설치한 모습이다. 독락당에 앉아서도 계곡의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바깥 경치를 집안으로 끌어온 선조의 지혜가 엿보인다. 독락당에서는 고택스테이가 가능하다.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며 자연을 벗 삼아 깊이 있는 휴식을 취해 보자.

  • 동락당 마루 앞 계곡
  • 경주 독락당 살창
독락당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00-3
  •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 관람료 : 무료
  • 고택스테이 문의 : 010 7620 7712
  • 고택스테이 : https://독락당.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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