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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국의 역사

작성자
이병권
등록일
2017-08-18
기준이 위만에게 속아 나라를 빼앗기고 바다를 건너와 마한을 세우고 동생들이 진한과 변한을 세웁니다.(BC 194)

『후한서』동이전 예조(濊條)에 실린 “원삭(元朔) 1년(서기전 128) ‘예군(濊君) 남려(南閭)가 우거를 배반하고 28만 명을 데리고 요동으로 갔다”는 기사와 『삼국지』위서 동이전 한조에 수록된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이 우거에 반하여 2,000여 호의 백성을 데리고 진국(辰國)으로 망명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위만조선 [衛滿朝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남당유고에 의하면 조문국의 시조는 예왕(穢王)이며 예군(濊君) 남려(南閭)로 추정된다.
즉 BC 128년에 의성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즉 조문국의 시작은 BC 128년이라고 추정된다.
용왕(龍王) (BC 124 - BC 119) 이 뒤를 이었고.
그 후대인
묘덕(妙德) (AD196.8 - AD228.1) 운모(雲帽)의 부친, 조문국이 8국으로 나뉨
묘초(妙楚) (AD 228.1 - ? ) 나라를 신라에 바침.
AD 245.2 : 신라에 정벌 당함.

진한에서 조문국이 실세가 된 것은 BC 128년이며 이때부터 진한은 곧 조문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진한이나 변한은 마한과 달리 인구가 적은 지역이었으므로 28만명이 이동을 했으니 조문국이 곧 진한이 돼버린 것이다.
AD42년에 김수로왕이 변한에 갔을 때 1만호였고 인구는 75000명이었다.
BC 128년 이전의 진한은 과연 얼마나 되는 인구가 있었겠는가?
아무리 많아도 10만에서 14만명정도였을 것이다. 28만명이면 이것의 두배이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진한이 이제는 조문국이 된 것이다.
남당유고의 백제왕기에 있는 백제서기에는 낙랑이 곧 진한이라고 하였다.
이때 조문국을 낙랑이라고도 한 것이다.
낙랑에서 온 세력이라는 뜻이다.
상당기간동안 낙랑으로도 불렸고,후대에 조문국으로 기록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초기에 신라와 갈등을 보인 낙랑은 바로 조문국인 것이다.

BC 194년 진한으로 시작하여
BC 128년 조문국이 주체가 되었으며
AD 245년 신라에 정복되어 나라가 망했다.
그러나 남당유고 신라기록인 유례니금기에 의하면
AD 363년 금성이 이서국에 의해 공격을 당했을때 금성을 구원한 군대는 바로 조문국의 군대였다.
대나무 잎사귀를 두룬 사람들이 바로 조문국 군대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신라국의 왕비를 배출하는 세력이 조문국 출신이었으므로, 조문국 사람들이 금성을 구원한 것이다.
조문국의 역사는 BC 128년부터 시작되어 AD 245년에 373년의 역사로 막을 내렸으나
AD 363년까지도 조문국 사람들의 힘은 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낙랑은 진한이며, 곧 조문국인 것을 보면 조문국이 진한을 계승한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BC 194년부터 AD 363년까지는 557년,
BC 128년부터 AD 363년까지는 491년의 영화가 조문국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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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수정일 :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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