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본 게시판은 자유로운 생각과 이야기를 시민들과 널리 공유하고 싶은 글을 게시하는 곳으로

게시글 내용에 대해서는 경주시가 답변하지 않으며, 검증 또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답변을 원하실 경우에는 아래 전자민원창구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의사항

상업성 광고, 반복 게시물, 개인정보보호 위반 게시물, 불건전한 내용, 욕설/비방하는 내용,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내용, 게시판 취지와 관련이 없는 글 등은 관리자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되며, 불법유해 정보를 게시할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질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제 역사인 여인왕국

작성자
이병권
등록일
2017-08-18
과거의 실제 역사인 여인왕국

여인국은 그동안 전설로만 알려졌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이며
BC57년에 건국한 신라가 바로 여인왕국의 실체이다.
BC57-AD14년까지 여인왕국으로 존속하였고, AD14년 고구려 도절태자의 아들인
일광(日光, AD 2- AD 42)이 왕위에 오르면서 실질적으로 신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일광은 박혁거세의 이름이요, 박혁거세는 주위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른 자를 뜻한다. 물론 그 뒤에도 여인왕국의 여왕은 계속 그 자리를 이었지만, 언제까지 존속했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김알지의 어머니 월지(月知)는 김씨의 시조 성한왕과 함께 김알지를 낳은 사람으로 그녀까지는 여인왕국의 여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계보는 다음과 같다.
재위기간 도읍지
시조 사라여왕 (BC57 – BC37) 안동시 서후면 광평2리
제2대 혁거지 (BC37 – BC??) 경주
제3대 선도성모 파소 (BC?? - AD??) 경주 (고구려 태자 도절과 박혁거세를 낳음)
제4대 월광 (AD?? - AD??) 경주
제5대 월지 (AD?? - AD??) 경주 (아버지는 박혁거세, 어머니 월광. 성한왕과 김알지를 낳음)

여인왕국이 건국되게 된 원인은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학대가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학대에서 탈출한 여성들이 안동의 구석진 곳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고, 이들은 가야사람들과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광평리에는 지금도 가야마을이 존재한다.
이들의 전성기 인구는 3천명이라 생각된다.

- 남자아이를 낳으면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이 중국기록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남성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파생된 나라이다. 그러나 상당기간 존속했던 것으로 보아, 주변국들과 어느정도의 교류가 가능했고, 심지어 금와왕의 동부여와도 교류가 있었다.
남성이 들어서면 우선 여왕을 모셔야 했고, 공경대신 순으로도 여성들과 잠자리를 해야 했을 정도로 남성들이 귀한 여성들의 나라였다. 삼국사기에서는 여국, 삼국유사에는 적녀국, 중국기록에는 여인국으로 나타난다. 여인왕국의 실제 상황을 잘 나타낸 것은 탈해이사금의 자녀가 700에 달했다는 기록이다. 그만큼 여인들이 신라에 넘쳐났을 정도로 많았다는 것이다.

이씨, 박씨, 석씨, 김씨 모두의 외가 시조가 선도성모이며, 곧 여인왕국의 건국자인 사라여왕의 후손이 된다. 그러므로 신라라는 이름보다 사라라는 이름이 6세기까지도 국명으로 사용되었다.
경주 선도산 바로 아래에 있는 그 주인 모를 묘가 바로 선도성모 파소천왕의 능이라 생각되며, 그 앞에 있는 묘는 세한, 김알지, 성한왕이라 생각된다. 좀 더 아래가 바로 김춘추의 태종무열왕릉이다. 좀 더 아래에는 김인문이 아닌 김유신의 무덤이 있다. 지금 관광코스에 등장하는 김유신묘는 신라후기의 왕릉이다.
파일
다음글
여인왕국터 사진과 사라여왕의 의상
이전글
공무원 한국사 암기법 사전 2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 출처표시
경주시청이 창작한 자유게시판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자료제공
  • 담당부서 : 경주시 (☎ 054-779-8585 ) /
  • 최근수정일 : 2020-05-21
만족도평가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조사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해 활용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