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 신라 때 용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 절은 없어지고 절터와 석탑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용장사지라 부르고, 이 절의 이름을 따서 이 마을을 용장이라 부르고 있다.
옛날에 마을 앞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서 마을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 해서 노실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노곡이라고 함.
옛날에 북명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이 있었던 자리에 돌홈이 있었다 한다. 돌홈을 놓아서 물을 먹으려고 했는지 절 소유의 논에 물을 대려 했는지 알수 없으나 근래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돌홈이 놓인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이 돌홈의 홈명(椧)자와 이 마을에 있는 계곡이 매우 좁아서 마치 홈과 같다하여 시내계(溪)자를 써서 명계라고 한다.
달같이 둥근 산 아래 있는 마을은 달미라고 하였는데 한자로 월산이라 함.
세 갈래의 시내가 모여서 갯벌을 이루는 동네이므로 개모듬이라고 한다.
마을 앞에 오리모양의 산이 있다 해서 오리부(鳧)자를 따고, 이 마을 형상이 소가 누운 것 같다 하여서 와지라고 하였는데 못지(池)자를 따서 부지라고 했다 함.
박달 쪽에서 내려오는 냇물은 내 바닥으로 스며들어 물이 많이 흐르지 않지만, 구왕골 쪽에 동보라는 큰 보가 있어서 이 보에는 물이 많이 새어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많이 새는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덕천이라 함.
옛날에 물 좋고 나무 많고 주민들이 잘 화합하여, 난이 있을 때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피난을 가야 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피난을 가지 않아도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고 하였음.
상신을 마신 또는 마성으로 부르고 있는데 맏이는 맵다는데서 매울신(辛)자를 써서 마신이라고 하며 이를 한자로 상신이라 함.
박달 뒷산의 생긴 모양이 흰 닭과 같다 하여 옛날에는 백계동이라 했다. 그러던 것이 흰 닭 즉 '밝은 닭'이 박달로 굳은 것으로 봄.
마을 앞에 학산이 있는데 이 산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이라 해서 날비(飛)자와 다만지(只)자를 따서 비지라고 함.
조선영조 때 화계라는 호를 가진 유의건 선비가 정자를 짓고 제자들을 양성한 곳인데, 선비의 호를 따서 화실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그리고 이곳 산의 생긴 모양이 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
망성리는 동쪽 망성산의 망(望)자와 성부산의 성(星)자를 따서 망성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