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혁

  • 1906년 : 군구역 조정으로 경주군 내남면이라 칭함.
  • 1912년 : 면사무소를 배리 박씨 정각에서 임시 설치 집무하였음.
  • 1914년 : 리동 통폐합에 따라 박달리 일부(상목골)가 산내면 내일리에 편입.
  • 1941년 : 면사무소를 용장리로 이전.
  • 1954년 : 리동 행정구역을 16개 리, 41개 동으로 조정.
  • 1975년 : 율동 및 배리가 경주시로 편입되고 13개 법정리동 34개 행정리동으로 분동.
  • 1991년 : 면사무소를 이조리 156-2번지로 신축 이전하였음.
  • 1995년 : 경주시와 경주군의 통합하여 경주시 내남면으로 개칭

위치 및 지역특색

  • 우리 내남면은 경주시의 서남쪽에 자리하며, 동으로는 외동읍과 경계하고, 남으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과 경계하며, 서북으로는 산내면, 건천읍과 경계합니다. 
  • 우리 면의 지형은 금오산과 고위산을 잇는 금오산맥(金鰲山脈)과 단석산, 고헌산을 잇는 주사산맥(朱砂山脈)이 남쪽으로 뻗쳐있어 각각 동쪽과 서쪽의 경계를 이루고 이들 산맥사이로 형산강 상류인 인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 형산강 상류인 내남은 평야가 넓고, 토질이 비옥하여 일찍이 쌀농사를 비롯한 오곡백과의 본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시설채소, 과수와 같은 원예작물과 특용작물, 한우, 양돈, 양계 등의 축산농가로 전업하여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 또한 우리 면은 경부고속도로와 국도 35호선이 중앙부의 남북으로 관통하는 한편 지방도 904호선이 동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교육시설로는 내남초등학교, 삼성생활예술고등학교가 있고 문화재는 용장사지삼층석탑을 비롯한 보물과 경덕왕릉과 같은 사적지 등 24점의 지정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곳입니다.

유래

옛날부터 경주부의 남쪽에 있다는 뜻으로 경주군 부남면으로 부르다가,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경주부의 남쪽 안에 있다 하여 경주 내남면이라 했다.
  • 용장리(茸長里)

    경주 남산에 신라 때 용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 절은 없어지고 절터와 석탑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용장사지라 부르고, 이 절의 이름을 따서 이 마을을 용장이라 부르고 있다.

  • 노곡리(蘆谷里)

    옛날에 마을 앞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서 마을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 해서 노실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노곡이라고 함.

  • 명계리(椧溪里)

    옛날에 북명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이 있었던 자리에 돌홈이 있었다 한다. 돌홈을 놓아서 물을 먹으려고 했는지 절 소유의 논에 물을 대려 했는지 알수 없으나 근래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돌홈이 놓인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이 돌홈의 홈명(椧)자와 이 마을에 있는 계곡이 매우 좁아서 마치 홈과 같다하여 시내계(溪)자를 써서 명계라고 한다.

  • 월산리(月山里)

    달같이 둥근 산 아래 있는 마을은 달미라고 하였는데 한자로 월산이라 함.

  • 이조리(伊助里)

    세 갈래의 시내가 모여서 갯벌을 이루는 동네이므로 개모듬이라고 한다.

  • 부지리(鳧池里)

    마을 앞에 오리모양의 산이 있다 해서 오리부(鳧)자를 따고, 이 마을 형상이 소가 누운 것 같다 하여서 와지라고 하였는데 못지(池)자를 따서 부지라고 했다 함.

  • 덕천리(德泉里)

    박달 쪽에서 내려오는 냇물은 내 바닥으로 스며들어 물이 많이 흐르지 않지만, 구왕골 쪽에 동보라는 큰 보가 있어서 이 보에는 물이 많이 새어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많이 새는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덕천이라 함.

  • 안심리(安心里)

    옛날에 물 좋고 나무 많고 주민들이 잘 화합하여, 난이 있을 때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피난을 가야 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피난을 가지 않아도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고 하였음.

  • 상신리(上辛里)

    상신을 마신 또는 마성으로 부르고 있는데 맏이는 맵다는데서 매울신(辛)자를 써서 마신이라고 하며 이를 한자로 상신이라 함.

  • 박달리(朴達里)

    박달 뒷산의 생긴 모양이 흰 닭과 같다 하여 옛날에는 백계동이라 했다. 그러던 것이 흰 닭 즉 '밝은 닭'이 박달로 굳은 것으로 봄.

  • 비지리(飛只里)

    마을 앞에 학산이 있는데 이 산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이라 해서 날비(飛)자와 다만지(只)자를 따서 비지라고 함.

  • 화곡리(花谷里)

    조선영조 때 화계라는 호를 가진 유의건 선비가 정자를 짓고 제자들을 양성한 곳인데, 선비의 호를 따서 화실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그리고 이곳 산의 생긴 모양이 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

  • 망성리(望星里)

    망성리는 동쪽 망성산의 망(望)자와 성부산의 성(星)자를 따서 망성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