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잠든 왕, 문무대왕릉
경주 동해안에서 가까운 바다 위, 거친 파도 속에서도 홀로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바위섬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수중릉, 문무대왕릉입니다.
서기 681년,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문무왕은 죽음을 앞두고 간절한 유언을 남긴것으로 전해집니다.
"내가 죽으면 불교의 법식에 따라 화장하여 동해에 묻어달라.
죽어서도 용이 되어 침입하는 왜구를 막아내겠노라." 이 특별한 유언에 따라 왕의 유골을 동해 입구 큰 바위 위에 장사를 지냈다고 하며, 사람들은 이 신성한 바위를 '대왕암'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수중릉, 문무대왕릉입니다.
서기 681년,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문무왕은 죽음을 앞두고 간절한 유언을 남긴것으로 전해집니다.
"내가 죽으면 불교의 법식에 따라 화장하여 동해에 묻어달라.
죽어서도 용이 되어 침입하는 왜구를 막아내겠노라." 이 특별한 유언에 따라 왕의 유골을 동해 입구 큰 바위 위에 장사를 지냈다고 하며, 사람들은 이 신성한 바위를 '대왕암'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거친 파도 속에서도 '고요함'을 유지하는 천년의 설계 대왕암은 자연바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부에 독특한 구조가 확인이 됩니다.
- 사방의 수로바위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길(수로)이 뚫려 있습니다.
- 과학적 배치특히 동쪽 수로로 들어온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힘이 약해진 뒤 내부로 흘러듭니다. 덕분에 밖은 거센 풍랑이 일어도 바위 안쪽 공간은 비교적 잔잔하게 유지됩니다.
- 미스터리의 널돌그 잔잔한 수면 아래에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거대한 '넓적한 돌(널돌)'이 있습니다. 이 아래 인위적 파낸 흔적으로 보아 문무왕의 수중릉일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바다 위에 세워진 '탑' 대왕암의 구조는 단순히 무덤의 기능을 넘어 종교적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난 수로는 마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의 형식과 관련지어 해석되기도 합니다.
사방으로 난 수로는 마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의 형식과 관련지어 해석되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보답, 감은사 대왕암을 마주한 육지에는 감은사 터가 남아 있습니다.
감은사는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이어 아들 신문왕이 완성한 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금당 아래에서 확인된 지하공간은,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절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는 『삼국유사』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전해집니다.
감은사는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이어 아들 신문왕이 완성한 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금당 아래에서 확인된 지하공간은,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절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는 『삼국유사』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전해집니다.
[출처 : 경주 문무대왕릉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