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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文武王), 신라의 찬란한 시대를 열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어간 왕이자,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대왕의 삶과 정신을 만나보세요.
01. 출생과 성장삼국통일을 준비한 태자
문무왕의 이름은 김법민으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문명왕후는 김유신의 누이로, 문무왕은 신라 왕실과 주요 세력의 기반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당나라와의 외교 활동에 참여하고, 백제 정벌에도 종군하며 정치와 군사 경험을 쌓았습니다.
02. 재위 초반백제 부흥 세력 진압과 고구려 멸망
661년 왕위에 오른 문무왕은 아버지 태종무열왕이 이루지 못한 삼국통일의 과업을 이어갔습니다. 즉위 후에는 백제 부흥 세력을 차례로 진압하여 혼란을 수습하였고, 668년에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참여했습니다. 이를 통해 신라 중심의 삼국통일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03. 재위 중반당의 침략에 맞선 항쟁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이에 문무왕은 신라의 자주적인 통치권을 지키기 위해 당과 맞섰습니다. 신라는 매초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 등에서 당군을 물리쳤고, 그 결과 대동강 이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통일 체제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04. 재위 후반통일 국가의 기반 정비
문무왕은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서도 넓어진 영토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제도 정비에 힘썼습니다. 지방 통치를 위한 소경 제도의 기반을 마련하고, 군사 조직을 정비하여 통일신라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세웠습니다.
05. 최후와 유언호국의 상징이 되다
문무왕은 68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은 뒤에도 나라를 지키고자 동해의 용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에 따라 그의 장례는 동해에서 치러졌으며, 경주 감포 앞바다의 대왕암은 오늘날 문무대왕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무대왕릉은 나라를 지키려 한 문무왕의 뜻을 상징하는 유적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출처 : 문무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