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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고려 태조23년(1413)에 경주부(慶州府)에 내속. 조선말까지 내서면(內西面)이라 칭하였음.
  • 1914년 : 부군폐합(府君廢合)에 따라 경주군 서면(慶州郡 西面)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19개 리동을 관할.
  • 1955년 : 경주시(慶州市)제가 시행됨에 따라 월성군 서면(月城郡 西面)으로 개칭.
  • 1973년 7월 11일 : 대통령령 제6543호에 의거 관내 11개 리동이 건천읍으로 분리되고, 나머지 8개 리동만을 관할.
  • 1988년 12월 31일 : 법률 제4050호에 의하여 군명칭을 경주군으로 개칭.
  • 1995년 1월 1일 : 시군 통합으로 경주시 서면으로 개칭.

위치 및 지역특색

  • 서면은 경주시의 서부관문에 위치하여 동쪽으로 건천읍, 서쪽으로 영천시 북안면, 남쪽으로 산내면, 북쪽으로는 영천시 고경면과 접하고 있음.
  • 경부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중앙선철도가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지역임.
  • 미곡 및 축산이 발달된 곳이며 포도, 복숭아 등 당도 높은 과일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함.

유래

  • 아화리(阿火里)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농사를 짓지 못하였으며 하절기에 초목이 고사(枯死)될 정도로 한해(旱害)가 심하여 언덕에 불을 지르면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탔다하여 아화(阿火)라 칭하였다 함.

  • 도계리(道溪里)

    선산 박씨(善山 朴氏)가 마을을 개척하여 도음(道音)이라 하였고, 그 후 평해 황씨(平海 黃氏)의 선비 황이근(黃以根)의 호가 계은공(溪隱公)이라 호학다문(好學多聞)하고 덕망이 있어 평해황씨 중시조(中始祖)가 되어 일문(一門)이 추앙하고 있으며 계은공이 길을 열었다 하여 도음을 도계(道溪)로 개칭하였음.

  • 천촌리(泉村理)

    이 마을 개척당시 뒷산에 올라 마을 형태를 보니 마을 주위가 흡사 정호(井戶,우물)처럼 지형이 깊고 공곡(空谷,텅 빈 골짜기)에 물이 새어나온다 하여 샘촌(泉村)이라 불러 왔음.

  • 서오리(棲梧里)

    선산 박씨(善山 朴氏)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오동(梧桐)이 많은 것을 보고 '마을에 오동나무와 그 열매가 많으니 장차 봉황이 와서 살겠구나(將棲鳳)' 하며 살아왔다. 그 후 과연 어느날 봉황이 날아와서 오동 가지에 앉아 울고갔다하여 마을이름을 서오(棲梧)라 하였다 함.

  • 심곡리(深谷里)

    이 마을 개척당시 심실(深室)이라 하였고 임진왜란을 피해온 진주 하씨(晋州 河氏) 경현(景賢)이라는 선비가 골짜기가 깊다하여 심곡(深谷)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름.

  • 도리(道里)

    이 마을 개척당시 심곡(深谷)이라 하였고, 1914년 부군폐합시 도리(道里)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름.

  • 사라리(舍羅里)

    약 1,200년 전 밀양 손씨(密陽 孫氏)가 이 마을을 개척 마을이 번창하라고 사라곡(舍羅谷)이라 하였으며, 그 후 1914년 부군폐합시 사라리(舍羅里)라 개칭함.

  • 운대리(雲臺里)
    • 군실/군곡(裙谷)(운대1리) :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옛날 월성 김씨(月城 金氏)가 이 마을을 개척할 때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용바위산의 모습이 옛 여인들이 입던 한복의 바지처럼 생겼다하여 마을이름을 군실 또는 군곡(裙谷)이라 칭했다.
    • 부운/운곡/운대(운대2리) : 부운대(浮雲臺) 밑에 있는 마을로 신라 선덕(일설에는 진덕)여왕이 봉황이 날아들 것 같은 이곳의 산세와 그 아래 맑은 호수의 아름다움을 듣고 유람차 친히 행차하시어 하루를 즐기셨다하며 뒷날 이를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앞산에 부운대(浮雲臺)라는 연꽃 무늬의 받침대를 받친 기념대를 세웠으며 또 여왕께서 행차하실 때는 기이하게도 채색구름이 아름답게 떠있었기 때문에 부운대라 부르기도 하여 마을 이름을 부운(浮雲) 또는 운곡(雲谷)이라 했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