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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말

작성자
감포읍
등록일
201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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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말(松臺末)은 글자 그대로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란 뜻이다. 감포항을 들어오자면 송
대말의 튀어나온 곶(串)을 돌아서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송대말의 곶은 상당히 위험하다.
날카로운 암초들이 톱날처럼 튀어나와 있거나 얕은 물에 잠겨있다. 해난사고가 빈발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감포항을 드나드는 어선들의 해난사고가 빈번하자 암초들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1933년 2월 감포어업협동조합에서 등간(燈竿)을 설치하였다. 당시에 감포에는 일본인 이주어촌이 형성 되어있어 다수의 일본어민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감포 읍내에는 일제시대 2층 목조 건축물들이 다수 남아있으며 지금도 가게나 살림집 등
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방 이후에도 감포항은 점차 커져만 갔다. 이용선박이 늘어나게 되면서 감포항 북쪽 송대말에 1955년 6월 30일 무인등대를 설치한다. 그후 육지 표시 기능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64년 12월 20일 기존 등탑에 대형 등명기를 설치하고 광력을 증강하여 유인등대로 전환한다.
송대말등대는 홍색과 백색이 번갈아 비춰지는 호광등(互光燈)이다. 인근 해역의 얕은 수심에 솟구친 암초를 비추는 조사등(照査燈)이 별도로 설치되어있다.
근년에는 아예 암초 위에 등표를 세워서 조난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송대말등대는 전형적인 백색의 원형등탑이다. 해방 이후에 건축되었으나 전래의 등탑 양식을 그
대로 이어받은 양식이다.
2001년 12월, 등대를 종합정비하면서 기존의 등탑은 그대로 놓아두고 그 옆에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감은사 3층 석탑을 형상화하여 새롭게 신축하였다.
송대말등대도 예의 신축등대들처럼 1층에는 등대박물관 기능을 하는 전시실을 꾸며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들이 송대말을 찾는 것은 그 무엇보다 울창한 소나무숲 덕분이다.
이곳은 본디 감포의 김씨네 선산이었고 지금도 무덤이 곳곳에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나무숲이 지극히 잘 보존되어왔으며 수령 수백 년을 넘는 소나무 그늘이 바람도 막아주고 여름철에는 쉼터로서 그만이다.
야심한 달밤, 등대물이 비추는데 어디선가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들려올 것 만 같은 곳. 그 옛날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이 거친 풍랑이 이는 파도를 피리를 불어서 달랬다는 만파식적의 그 장엄하고 신묘한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곳이 바로 송대말등대가 아닐까.
돌아오는 길에 불과 5분여 거리인 감포항에 들려서 가자미회를 먹고 오는 멋도 제격이다.
동해의 모래바닥에 배를 깔고 살아가는 크고 작은 가자미들은 횟감으로도 그만이지만, 조밥과 섞어서 발효시켜 먹는 가자미식혜가 또한 제격이다.
감포항은 오늘날은 경주의 보기 드문 외항으로써 수많은 어선들이 드나들고 있는 천혜의 어항이기도 하다. 비록 신라 천년의 영광은 사라졌어도 불 밝힌 어선들은 오늘날도 불야성을 이루면서 감포항 송대말등대의 불빛을 받으며 오고가는 중이다. <주강현·해양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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