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일본 킨끼지방의 중심도시(오오사카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동경 135°42'~135°59' 북위 34°36'~3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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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276.84㎢ (인구밀도 : 1,732명/㎢) |
인구 | 약 37만명 |
공무원수 | 3,317명 |
시의회구성 | 의원수 46명, 위원회-의회운영위원회,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
기후 | 온화하고 강우량 많음 (평균기온 14.5° 연평균강우량 1,300㎜) |
시의 상징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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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소재지 | 日本國奈良縣奈良市二條大路南1-1-1 |
전화번호 | +81-742-34-1965(문화국제과 국제교류계) |
홈페이지 | http://www.city.nara.lg.jp/ |
관광정보 | http://narashikanko.jp/kr/ |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던 8세기경 경주와 나라는 양국의 수도로서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상호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양시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현재 양국의 관광도시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관계로 인해 먼저 민간단체(특히 야구협회)간의 교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67년 5월에 박수대 경주시장이 자매결연을 제의하였으며, 그 이후 양시의 시장이 상호 방문한 후, 1970년 4월 15일 김한엽 경주시장일행 5명이 나라시를 방문하여 자매결연을 체결하였다
자매결연을 맺은 이래, 매년 상호 시민사절단·방문단을 파견하여 문화·학술·스포츠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히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2003년 9월에는 경주시에서 개최된「제4회자매3도시체육대회」에 大川靖則시장을 단장으로 한 나라시민선수단 148명이 방문하여 경주시민들과 친선우의를 돈독히 하였다. 그리고 매년 개최되는 「경주 한국의 술과 떡잔치」에 떡제조단을 파견하고 있다.
나라(奈良)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덴메이(天明)천황 3년 710년에 飛鳥(아스카)의 후지와라궁(藤原宮)에서 나라로 도읍지를 옮김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7대 70여 년간 수도로서 번성하면서 찬란한 텐표(天平)문화를 꽃피웠다. 당시 중국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을 모델로 하여 헤이죠쿄(平城京)를 건립하고, 아스카에 있었던 야쿠시지(藥師寺), 아스카데라(飛鳥寺), 다이칸다이지(大官大寺)가 연이어 건립되었다. 그러나 延曆3年 784년에 도읍지가 나가오카쿄(長岡京)로 옮겨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후, 한때 南部로 불리기도 했다. 1887년 나라현의 현청소재지가 되었으며, 1889년부터 町制가 실시되다가 1898년에 市制가 실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행히도 제2차세계대전의 전화로부터 벗어난 나라시는 일본문화의 고향으로서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일본 대표의 관광지로 발전하고 있다.
도다이지(東大寺)는 1998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교에 의한 나라의 진호를 바랐던 덴무(天武)천황은 국가에서 돈을 모아 8차례의 주조와 9년의 세월을 들여 대불을 완성하였다. 752년에 대불이 완성되고 개안공양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분로쿠(文綠)시대에 재건된 목조건축물이며, 본존불 역시 세계최대의 금동불로 아직까지 그 무게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한 스케일은 찾아오는 사람을 압도한다.
고후꾸지(興福寺)는 1998년 12월 세계문 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710년 와도(和 銅)3년에 수도를 지금의 나라(奈良)로 천도함에 따라, 아스카(飛鳥)에서 우마 야사카사(廐坂寺)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이름도 고후꾸지(興福寺)로 고쳤다. 나라의 상징인 유명한 5층탑(높이 51m)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과 불상들이 현재까지 남아있어, 이 절의 역사적 무게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나라(奈良)공원은 메이지(明治)13년인 1880년에 현재의 지역을 정비하여 공원 으로 지정하였으며, 다이세(大政)11년 1922년에는 나라의 명승지로 지정되었 다. 와카쿠사야마(若草山)를 비롯한 가스카야마(春日山), 도다이지(東大寺), 고후쿠지(興福寺), 카스사다이샤(春日大社)등이 있으며, 이 일대에 약 2000마리의 사슴을 방목하고 있어,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인간이 융합된 아름다운 경관이 매우 인상적이다.
야쿠시지(藥師寺)는 1998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天武(텐무)천황이 황후의 병환 쾌유를 기원하기 위해 처음에는 아스카(飛鳥)에 건립하였으나, 나라(奈良)로 천도함에 따라 현재의 위 치로 옮겼다. 수차례의 화재로 동탑만이 창건당시 8세기경의 것으로 금당과 서 탑은 쇼와(昭和)시대에 재건되었다. 탑을 비롯한 가람건축은 마치 용궁 같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헤이죠큐 터(平城宮跡)는 1998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8세기경 중국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성(長安城) 을 본떠서, 그 4분의 1크기로 조영한 헤이죠큐(平城宮)는 당시 20만의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성을 중심으로 한 바둑판 모양으로 수십 년 전부터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형태가 거의 밝혀지고 있다.
도쇼다이지(唐招提寺)는 중국 당나라의 고승 감진(鑑眞)에 의해 759년에 창건 되었다. 감진(鑑眞)은 741년 55세가 되 던 해에 계율(戒律)을 전하기 위해 일 본에 건너갔다. 다섯 번이나 도항에 실패하며 양쪽 눈을 실명했으나, 감진(鑑眞)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섯 번째에 겨우 일본 땅을 밟았으며 754년에 나라(奈良)에 당도했다. 도다이지(東大寺)에 계단(戒壇)을 설치하여 쇼무(聖武)천황을 비롯하여 400여명에게 계율(戒律)을 가르쳤고, 니시노쿄(西ノ京)에 있는 니이타베(新田部)천왕이 살던 집을 받아 세운 절이다.
가스가다이샤(春日大社)는 헤이죠쿄(平 城京)의 수호를 위해 창건된 신사(神社) 로, 茨城· (이바라키현)의 가시마신궁 (鹿島神宮)에서 모셔온 다케미카즈치노 미코토(武甕槌命), 치바현(千葉· )의 가토리신궁(香取神宮)에서 모셔온 후쓰누시노미코토(· 津主命), 天· 屋根命(아메노코야네노미코토)와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오카신사(枚岡神社)에서 모셔온 히메가미(比· 神)신을 가스카(春日)지역으로 맞아들여 모시고 있다. 768년에 네 개의 신전이 창건되었으며, 후지와라씨(藤原氏)의 씨족신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