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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용강동(龍江洞) 동명칭은 동네 앞에 차고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해서 '참새미', '냉천'이라고 불려오다가, 150여 년 전 문강 최진사가 있을 때 동네 뒷산인 소금강산이 용과 같이 생겼고 형산강에서 용이 등천하였다고 해서 용강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음. 북쪽으로 천북면이, 남쪽으로 황성동과 동천동이 위치하고, 동쪽으로 포항-울산 간 7번 국도가 관통하고 있으며, 국립공원 소금강산이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용강동은 1995.3.1. 용황동에서 황성동과 용강동으로 분리되어 27개통 168개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구는 18,500여 명이고 관내면적은 5k㎡ 남짓이다. 현재 65개의 공동주택과 5개 자연부락으로 도농복합 형태의 행정동이다.

유래

  • 광중(廣中)은 조선시대 광제원이 있었으며, 넓은 들과 하천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광중이라고도 한다. 용강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다부리(多富里)는 구곡지(九谷池)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약 500년 전 진주하씨(晋州河氏)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하며, 백률사 뒷편에 부처가 많았다고 하여 ‘다불(多佛)’이라고도 한다.
  • '서당미기'는 서낭당의 목이었다고 해서 ‘서당목’, ‘서당미기’라 했고, 서낭당 신이 있는 곳이라고 하여 ‘신리(神里)’라 부르다가 그 후 ‘신리(新里)’라고 바꾸어 불렀다.
  • '승삼(僧三)'은 신라 때 큰 절이 있었던 곳으로, 고려 때 승려 셋이 마을 뒷산에서 내려와 관가의 앞뜰로 들어가더니 호랑이로 변해 달아나 강동면 호명리로 숨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어 승삼촌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