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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신라시대 : 신라6부의 하나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에 속함
  • 고려(984년) : 성종3년 삼경의 하나인 동경에 속함
  • 조선(1413년) : 태종13년 경주부에 속함
  • 1895년 : 경주군 동해면으로 개칭
  • 1906년 : 경주군 지역편성시 장기군 양남면으로 개칭
  • 1914년 : 부군 통폐합에 따라 경주군에 귀속
  • 1953년 : 15개 법정리동 22개 행정리동으로 나눔
  • 1955년 9월1일 : 경주읍이 시로 승격, 군명칭을 월성군으로 개칭. 월성군 양남면으로 개칭
  • 1987년 1월1일 : 양북면 봉길리 일부(월성원전부지) 양남면 편입
  • 1989년 1월1일 : 월성군을 경주군으로 개칭
  • 1995년 1월1일 : 통합 경주시 출범. 경주시 양남면으로 개칭

유래

  • 하서(下西)리
    • 마을의 자연환경

      하서는 남쪽은 수렴, 북쪽은 환서, 동쪽은 바다, 서쪽은 신서로 동해해변가의 온화한 기온에 옥토를 가진 농어업 겸업의 환경좋은 마을이다. 하서리는 애일, 월아, 오곡, 망정, 진리, 후리 등 7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1리, 2리, 3리, 4리로 형성되어 있다.

    • 마을의 역사

      하서리(下西里)는 면소재지이며 농상권의 중심지이다. 신라육부촌의 하나인 금산가리촌의 촌장이 입주개척한 후 하서지라 칭해오다가 조선시대에는 경주부, 1895년 경주군 동해면에, 1914년 부군통폐합시에는 경주군 양남면 하서리, 1955년 월성군에 영속되었다가 1989년 경주군 양남면 하서리로, 1995년 1월1일 법률 제4774호로 도농복합형태의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로 개칭 됨.

      • 애일(愛日) : 하루 종일 햇볕이 비치는 곳이라 하여 애일리라 함.
      • 월아(月牙) : 마을의 모양이 초승달과 같다 하여 월아라 함.
      • 오곡(梧谷) :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다하여 오곡이라 불림.
      • 망정(望亭) : 괴목(槐木) 나무의 정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래서 그리워하는 의미에서 망정이라 부르게 됨.
      • 진리(津里) :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이 왕명으로 왕자를 구하러 일본국으로 떠날 때 여기서 출발했다하여 표리(票里)라 해오다가 진리로 개칭 함.
      • 후리(後里) : 진리마을의 뒷마을이라 하여 후리라 부르고 있다.
  • 환서(環西)리
    • 마을의 자연환경

      환서리는 남쪽이 하서, 북쪽이 나산, 서북쪽이 기구리, 동쪽은 석읍으로 일반영농과 함께 축산도 하고 있는 마을이다. 현재 전방, 송정, 구만 3개 부락에 1리, 2리로 형성되어 있는 토질이 좋은 곳이다.

    • 마을의 역사

      환서리(環西里)는 1914년 부군통폐합 당시 그 동네주위가 고리 같다하여 고리환(環)자 하서리 되었다 한다.

      • 전방(箭坊) : 밭이 많은 곳이라하기도 하며 화살전(箭)자 전방(箭坊)이라고도 함.
      • 송정(松亭) : 소나무의 정자가 좋다하여 그 이름을 따서 송정(松亭)이라 함.
      • 구만(九万) : 약 400년 전 윤씨가 개척한 후에 구만석(九万石)이나하는 거부가 생겼다하여 구만리(九万里)라 부르게 되었으며 역시 앞 평야 들이 비옥한 점을 보아 개정자라고도 한다.
    • 마을의 전설
      • 이내봉(里內峰) : 이내봉에는 묘를 쓰면 마을주민에게 큰 화가 나서 동네가 문을 닫는다 하여 금한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마을 산에 주민들 몰래 묘를 쓴 구만석 하던 거부가 화를 당하자 이장하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 수렴(水念)리
    • 마을의 자연환경

      수렴리는 경주의 최동남 해안의 울산강 동쪽에 접한 동해의 해변 마을이다. 서쪽은 환서, 북쪽은 하서리와 접하며 해안바위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수영포, 관성, 영암, 지경 4개 부락으로 형성되고 1리, 2리로 구분되었다. 어업이 주업이나 농경지가 좋아 농사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옛날 왜적의 침입이 많은 곳이라 성질이 강하며 성공한 사람이 많이 있다.

    • 마을의 역사

      임진왜란 때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병의 병영을 가졌던 곳이라 하여 수영포리라 하였는데 1914년에 행정리명을 수렴리라 하였다.

      • 관성(觀星) : 옛날 시계가 없을 때에 별을 보고 시간을 측정하는 첨성대같은 것이 있었다하여 관성이라 함.
      • 영암(靈岩) : 바위에 매년 무사고 제를 올린다 하여 영암인데 3년마다 별신굿도 한다.
      • 지경(地境) : 경상북도의 지역경계라 하여 지경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굼바위. 그무바위 등의 주위의 바위를 이용하여 미역, 전복 등의 양식업을 하고 있다.
  • 신서(新西)리
    • 마을의 자연환경

      신서리는 북쪽에 대성광산, 남쪽에 수렴, 서쪽에 상계를 경계로 하고 동남해안에 위치한 광산마을로 자연환경이 좋은 마을이다. 범실, 섬안, 다곡, 지영곡, 고평, 억수 6개 마을이 형성되어 신서리를 이루고 있다. 

    • 마을의 역사

      1914년 부군통폐합시 행정리명이 신서리로 부르게 되었다.

      • 범실(凡室) : 지형이 범(凡)자라 하여 범실이다.
      • 섬안(島內) : 옛날 주위가 하천이라 섬마을이다. 신서의 중심 마을이다.
      • 다곡(多谷) : 마을 형곡이 많을다(多)자형이어서 다곡이라 한다.
      • 지영곡(池永谷) : 옛날에는 기름이 났다하여 지름골, 지영곡(池永谷)이 되었다.
      • 고평(高坪) : 높고 평평하여 고평이라 하였다.
      • 억수(億樹) : 옛날 마을 뒷산에 나무가 무성하여 억수(億樹)라 칭하였다.
  • 서동(瑞洞)리
    • 마을의 자연환경

      서동리는 남쪽이 울산 강동면에 인접하고, 북쪽은 신서리, 서쪽은 상계리, 동쪽은 수렴리를 경계로 자연환경이 좋아 농촌으로서의 경치가 좋은 곳이다.

    • 마을의 역사

      장기군 양남면 서동으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서동리라 하고 경주군 양남면에 편입되었다. 신라시대부터 서부 상측에 위치하였다하여 웃서라고 하였고, 서쪽 1.5km 지점에 관문성이 개축되어 있어 전시에는 군인들이 적을 방어하고, 평상시에는 군인들이 부락에 와서 영농을 하였다하여 둔전리(屯田里)라고 하여 오던 중 1914년 부군통폐합시에 서동리(瑞洞里)로 되어 지금까지 오고 있다.

    • 마을의 유적
      • 안산 : 서동마을 앞에 있는 산으로, 전설에 의하면 옛날 어느 여인이 빨래를 하러 가다가 이 산이 동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산도 걸어갈수 있느냐?"고 하자 산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 마을의 지명
      • 고짓골 : 서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
      • 광징이고개 : 광징이에 있는 고개로 광징이에서 울산광역시 강동동 신명리로 넘어간다.
      • 광징이 : 서동 남쪽에 있는 넓은 골짜기
      • 당미기 : 서낭당이 있던 고개로 진등 남쪽에 있다.
      • 덕골 : 과목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못골 : 못이 있는 골짜기로 서동 서남쪽에 있다.
      • 어구절골 : 어귀사라는 절이 있던 골짜기
      • 절골 : 절이 있던 골짜기로 광징이 동쪽에 있다.
      • 진등 : 못골 서남쪽에 있는 등성이
      • 피낫골 : 덕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상계(上溪)리
    • 마을의 자연환경

      상계리는 남쪽은 서동리, 북쪽은 기구리, 동쪽은 신서리, 서쪽는 신대리와 접하고 있다. 대하천이 중심지로 흐르고 있어 영농의 적지이다. 특히 울산 강동면 지역경계에 화림, 양지, 서왕 3개 마을이 형성되어 상계리가 되었다.

    • 마을의 역사

      장기군 양남면 지역으로, 위쪽 개울가가 되므로 상계, 상대라 불렀다. 1914년 부군통폐합시에 행정리명이 상계로 되어 화림, 양지, 서왕 등이 상계리에 속하며 경주군 양남면에 편입되었다.

      • 화림(花林) : 뒷산 이름이 화봉이고 마을 앞 숲이 울창하여 화림이라 한다.
      • 양지(陽地) :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마을에 햇빛이 오래 있다하여 양지(陽地)라 한다.
      • 서왕(西王) : 원래 석(昔)씨 왕릉이 있어 석왕리(昔王里)인데 마을이름에 그 왕명을 칭하는 것은 곤란하다하여 서왕리로 변하였다.
    • 마을의 유적
      • 청수폭포 : 너비 2m, 높이 약20m의 폭포로 청숫골에 있다. 피부병에 좋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물맞이를 하러 온다.
    • 마을의 지명
      • 가리의골 : 맷돌배미 밑에 있어 가루가 된다는 뜻을 땄다고 하는 골짜기로 청숫골 남쪽에 있다.
      • 꼬약나뭇골 : 꼬약나무(고염나무)가 있는 골자기. 밭무지기 동남쪽에 있다.
      • 뒷골 : 맷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불멧골 : 불멧간(풀뭇간)이 있었다고 하는 골짜기로 청숫골 남쪽에 있다.
      • 숙재내골 : 쑥이 많다고 하는 골짜기로 술방골 남쪽에 있다.
      • 지통골 : 한지를 뜨는 지통이 있던 골짜기로 청수폭포 서쪽에 있다.
      • 청숫골 : 청수폭포가 있는 골짜기로 서왕리 서쪽에 있다.
  • 신대(新垈)리
    • 마을의 자연환경

      신대리는 서쪽은 삼태봉, 동쪽은 상계리, 남쪽은 울산 농소 그리고 강동면의 경계 지점이다. 옛날 외동읍으로 가는 국도변이라 교통이 편리하고 또 만리성재로 통하는 재만리에 옛날 숯방이었으며 환경 좋은 곳이다.

    • 마을의 역사

      임진왜란 후 파평윤씨가 개척할 때 새로 지은 집터라하여 신대라 하였고, 이 성내에 어전리(於田里)는 팔송지라고도 하며, 외동읍으로 갈려면 만리(万里)재를 넘기 위하여 어정거린다 하여 어전이고, 옛날 소나무 여덟그루(8樹)가 있었다하여 팔송지(八松地)라고 한다.

      • 건대(乾臺) : 동네 앞에 건대라는 산이 있어 옛부터 건대로 불리고 있다.
      • 숯방(炭坊) : 옛날 숯을 생산하던 곳이라 숯방직, 숯방(炭坊)이라 한다.
      • 토방(土坊) : 옛날 이 동네의 흙을 가지고 솟뿌리 공장을 하였다하여 토방(土坊)이다. 특히 신라의 성덕왕께서는 각평원진(角平元眞)을 시켜 장정 39,262명을 동원하여 해발 650m, 길이 2,039m의 성곽을 쌓아 왜적을 격퇴시킨 만리성이 바로 신대리이다.
  • 기구(基邱)리
    • 마을의 자연환경

      기구리의 경계는 남쪽은 상계리, 북쪽은 석읍리, 서쪽은 신대리, 동쪽은 서동리이다. 산세가 서에서 동남으로 동북향으로 되어 있는데 응달편의 동네가 기구리이다.

    • 마을의 역사

      조선 선조때 박영남이라는 사람이 임진왜란 때 크게 용맹을 떨치다 연전 전투에서 전사한, 그의 아버지 박인국 장군의 유해를 진주(晉州) 남사까지 운구해 가지 못하고 이곳의 북쪽 산에 묘를 쓴 후 가까운 산의 두들에 정착하여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기구 또는 텃두들이라 불렀다.

    • 마을의 유적
      • 새한바위 : 기구리에서 하서쪽으로 약 1km정도 내려가면 새한바위가 있는데, 약 230m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이 바위는 옛날 해일이 일어나면 제일 윗부분의 바위위에 새한마리가 앉을 정도만 남고 전부가 바다물에 잠겼다하여 그 후부터 새한바위로 불리어 왔다.
      • 만송재 : 증 좌승지 박인국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세운 재사(齋舍)이다. 매봉재 아래 있다.
    • 마을의 지명
      • 갈골 : 기구 북쪽에 있는 골짜기
      • 고사집골 : 고사집(상여집)이 있었던 골짜기로, 큰사낫골 북쪽에 있다.
      • 논골 : 기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농바웃골 : 농바위가 있는 골짜기로, 점태골 북쪽에 있다.
      • 농바우 : 모양이 농처럼 생긴 바위 농암, 용암이라고도 한다.
      • 다앗골 : 기구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당숫골 : 당제를 지내던 나무가 있던 골짜기로 다밭밑 서쪽에 있다.
      • 등잔골 : 돌산태말랭이 아래에 있는 골짜기
      • 미영밭골 : 미영밭(목화밭)이 있던 골짜기로 용솟골 북쪽에 있다.
      • 부뭇골 : 불뭇간(대장간)이 있던 마을. 기구 서북쪽에 있다.
      • 사낫골 : 기구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성낫골 : 쇠를 캤다고 하는 골짜기로 용숫골 동쪽에 있다.
      • 시붓골 : 시북(수렁)이 있는 골짜기
      • 메무골 : 기구 서북쪽 매봉재 밑에 있던 마을로 응곡, 매곡이라고도 불렀다. 1973년 폭우로 큰 피해를 본 후 마을을 석촌리로 이주하였다.
      • 매봉재 : 모양이 마치 매처럼 생긴 산으로 , 기구리와 석촌리에 걸쳐 있다.
  • 석촌(石村)리
    • 마을의 자연환경

      석촌리는 남쪽은 신대리, 북쪽은 효동리, 서쪽은 외동읍 입실리, 동쪽은 석읍리를 경계로 하고 있다. 학전, 명대, 용암의 자연부락이 석촌리를 이루고 있다.

    • 마을의 역사

      장기군 양남면으로 돌이 많았다하여 돌촌, 석촌, 석을촌(石乙村)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석촌리라 하고 경주군 양남면에 편입되었다.

      • 학전(鶴田) : 임진왜란 때 수 백마리의 백학이 이곳 밭에 와서 피란하였다 하여 세밭두들이라고 불렀다고도 하며, 석촌 동남쪽 둔덕에 새가 많이 모여 들어 학전이라 한다.
      • 새마을(新村) : 1973년 폭우 때 피해를 당한 석촌리와 기구리 마을주민이 1974년 10월에 학전 남쪽에 이주시켜 만든 마을이다. 마을이 새로 형성되었으므로 동네 이름을 새동네(新村)라 하였다.
      • 명대(名垈) :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앞산 무덤에서 밤에 불이 비쳐 마을을 밝게 하였다 하여 명대라 불렀다 한다. 또 다른 말로 이 마을의 동쪽 산에 살던 초(또는 최) 장군과 석읍 대현산에 살던 황장군이 서로 활로 싸워 초전테, 최싸움테라고 하다가, 피가 산에서 흘러 내려 왔으므로 산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를 피밭골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그 후 마을은 평온해졌고 해가뜨면 밝은 양지가 되는 곳이라 하여 명대(明垈)라 불렀다 한다.
      • 용암(龍岩) : 위 산의 모양이 용바위 같아서 용암 또는 용골이라 하였다.
    • 마을의 유적
      • 초장군무덤 : 피밭골 등성이에 있는 초장군(또는 최장군)의 무덤. 초장군과 황장군이 서로 활로싸워 피가 아래로 흘렀으므로 골짜기를 피밭골이라 부른다고도 전한다.
      • 초진지테 : 옛날 초장군이 이곳에 살면서 석읍 대현에 사는 황장군과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터(들). 명대골에 있다
    • 마을의 지명
      • 갓얖 : 말림갓의 옆이라 하여 갓얖이라 부르는 골짜기 
      • 개캣딩이 : 지형이 마치 개콧등처럼 생긴 등성이로 용바우 서쪽에 있다.
      • 모르밭미기 : 모래밭이 있었던 골짜기로 용바우 복판에 있다.
      • 반통골 : 이밭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용바우 : 마치 용처럼 생긴 바위로 용바웃골 동쪽에 있다. 용암이라고도 한다.
      • 응봉 : 기구리의 매봉재
      • 이밭골 : 용바우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점말 : 옹기점이 있었다고 하는 골짜기로 용바우 남쪽에 있다.
      • 피밭골 : 명대골의 초장군 무덤 아래쪽의 골짜기
      • 한밭장재 : 한밭골에서 효동리로 넘어가는 긴 고개
      • 행얏골재 : 행얏골에서 외동읍 모화리의 원원사로 넘어가는 고개
  • 석읍(石邑)리
    • 마을의 자연환경

      석읍리는 대천을 따라 북쪽의 우산봉(牛山峰) 아래에서 남으로 기구리에 접하고, 서쪽은 효동리, 동쪽이 상라리이다. 따라서 교통의 요지이며, 역내 수력이 좋아 농사에 적합한 마을로서 대현, 산림 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 마을의 역사

      장기군 양남면이었으며 돌이 많았다하여 돌골 또는 석읍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경주군 양남면에 편입되었다.

      • 석읍(石邑) : 백씨에 석촌이란 선비가 입주개척 당시에 돌이 많다하여 돌골 또는 석읍이라 하였다
      • 대현(大縣) : 약 500년 전 황현장군이 이곳을 개척하여 살게 됨에 따라 마을이름을 한티 또는 대현(大峴)이라 부르다가 주민이 늘어나자 대현(大縣)이라 하게 되었다.
      • 산림(山林) : 일명 두뭇골인데, 옛날 이 마을 주민들이 지방관리에게 잘못보여 다른 마을보다 세금을 두 몫이나 더 냈다고 하여 두뭇골이라 불렀다고 하며, 이 마을 뒷산에 숲이 울창하다 하여 산림(山林)이라고도 한다.
    • 마을의 유적
      • 대현봉수 : 대현의 한티재에 있는 봉수대로 동으로 하서지봉수에 응하고 북으로 동악봉수에 알리니 그 거리는 30리이다.
      • 소석정 : 석읍에 있는 정자로 최석곤이 노닐던 곳이었다 한다.
    • 마을의 지명
      • 두만재 : 두 산의 사이에 있는 고개로 두뭇고개 동북쪽에서 상라리 자부로 넘어간다.
      • 두만바우 : 여러 개의 바위가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있으며 두만재에 있다.
      • 섬안등 : 두뭇골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로 양쪽에 물이 흘러 섬 안처럼 보인다.
      • 소미기산 : 석읍, 효동, 상라, 양북 죽전리에 걸쳐 있는 높이 334m의 산. 효잠, 우산, 우잠이라고도 한다.
      • 웅굴골 : 웅굴(샘)이 있는 골짜기로 석읍 남쪽에 있다.
      • 태산만딩이 : 동넷봉 남쪽에 있는 산
  • 효동(孝洞)리
    • 마을의 자연환경

      효동리는 남쪽은 석촌, 북쪽은 죽전, 동쪽은 석읍, 서쪽은 외동읍 개곡리쪽으로 효령재가 있다. 효령, 한량곡, 중산, 남전, 어전, 제원, 월천 등으로 형성되어 1리, 2리로 구분 되었다. 농경지로서 환경이 좋은 곳이다.

    • 마을의 역사
      • 효동(孝洞) : 입실에서 동대산을 넘어 양남으로 가는 고갯마루의 높은 지대에 위치한 산골마을이다. 마을 형세가 마치 소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소재, 우령리(牛嶺釐), 우잠리(牛岑里)라 불렀으나, 마을에서 효부(孝婦)가 났다고 하여 효동(孝洞), 효재, 효령(孝嶺), 효잠(孝岑)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 한량곡(漢良谷) : 옛날 한량사(漢良寺)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한량곡(漢良谷)이라 한다.
      • 중산(中山) : 들 가운데 산이 있어 그 산이름을 따서 중산이라 한다.
      • 남전(南田) : 죽전(竹田)의 남쪽이라 하여 남전이라 한다.
      • 어전(於田) : 이곳에 승녀(僧女)들이 쓰는 바랑갓을 만드는 늘이라는 다년생식물이 있어 어전(於田)이라한다.
      • 제원 : 옛날부터 입실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길목으로써 인적이 드믄 곳이었으므로 이곳에 원(院)을 지어 행인들이 유숙(留宿)하던 곳이라 하여 유이라 한다.
      • 월천(月川) : 다래가 나는 골짜기라며 냇물이 맑고 깨끗하여 달이 비치어 월천(月川)이라 한다
  • 상라(上羅)리
    • 마을의 자연환경

      상라리는 남쪽은 나산, 북쪽은 송전, 동쪽은 국립 공원인 봉길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상라리로 개칭되었으며, 상라리, 자부리 2개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 마을의 역사

      장기군 양남면이었으며, 나아 위쪽이 되므로 웃나아, 웃나, 상라, 상라아지, 상내아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상라리로 하고 경주군 양남면에 편입 되었다.

    • 마을의 유적
      • 상라지 : 상라소류지라고도 하며, 저수량 150만톤에 몽리면적 45ha이다. 1976년에 준공되었는데, 상라 서쪽에 있다.
      • 자부(自富) : 옛날 이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모두가 의식주에 곤란을 받지않고 부유하게 살았다고 하여 자부 또는 자붓이라 불렀다 한다.

        ※ 6.25사변 전 공비 2명이 생포된 보복으로 1950년 1월 25일 양민 25명을 몰사하고 가옥 12동을 전소한 반공마을이다.

      • 상라(上羅) : 나아골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웃나아, 웃나, 상내아 또는 상라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 마을의 지명
      • 굴통골 : 굴이 있는 골짜기로 자부 동쪽에 있다.
      • 굴통골재 : 굴통골에서 양북면 구길리로 넘어가는 고개
      • 두만재 : 자부 서쪽에서 석읍리로 넘어가는 고개
      • 범방재 : 범바웃골에 있는 고개로, 상라에서 양북면 구길리로 넘어간다.
      • 범바웃골 : 범바우가 있는 골짜기로 상라 동쪽에 있다.
      • 자붓재 : 웃자부 서북쪽에서 양북면 송전리로 넘어가는 고개
      • 장고개 : 자부 서남쪽에서 석읍리로 넘어가는 고개
      • 화잠골 : 지형이 비녀처럼 생긴 골짜기로 상라 서쪽에 있다.
  • 나산(羅山)리
    • 마을의 자연환경

      나산리는 동쪽은 나아, 서북쪽은 상라, 동북쪽은 경주국립공원으로 동해안의 영농 적지이다. 또 기후, 토질, 기타 풍속 등이 예절바른 마을이다. 현 큰마을, 새마을, 기액, 지곡 등이 형성되어 나산을 이루고 있다.

    • 마을의 역사
      • 나산(羅山) : 신라육부촌인 금산가리촌장이 입주개척당시 나산리로 칭하여온 것이 마을이름이다.
      • 큰마을(大里) : 옛날 나아골의 큰말, 새말, 지곡, 웃라, 자부, 수아, 장아, 모포, 송하, 죽전, 읍천포 중에서 제일 큰 마을이라하여 큰마을이라 한다.
      • 새마을(新里) : 450년 전 김녕김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새마을, 새말, 신리라 부르게 되었다.
      • 기액(基腋) : 12개 부락 중에 가장 큰마을 옆에 생겼다하여 기액마을이다.
      • 지곡(池谷) : 이 동네 안에 못이 있다하여 지곡(池谷)이라 한다.
    • 마을의 유적
      • 국구암(國求岩) : 신라말 경순왕이 망국 시에 암자에 가서 피신하였다하여 국구암이라 칭하며 그 암자 뒤쪽에 자연굴이 하나 있는데 세사람 정도가 들어갈 만한 곳으로 당시에는 왕의 음식물과 일용품 등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현재 이 암자를 보덕암(普德庵)이라 부른다.
      • 나산사(羅山祠) : 큰마을 가운데에 있는데, 백촌 김문기를 제향하는 곳이다. 나산사는 정조 4년에 지어졌으나, 고종 5년 금령에 의해 헐리었고, 1936년 중건 복향 되었다. 김문기의 자는 여태이고 본관은 김녕으로, 관직을 두루 거쳐 단종 때에는 이조판서를 지냈다. 단종복위 모임에 가담했다가 세조1년에 순절했으며, 영조7년 관직이 복구 되었고, 정조2년 익호를 내리고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 되었다. 같은 왕 15년 장릉의 충신단에 배향 되었다. 동학사 숙모전에도 배향한다.
      • 밀양박씨 정렬각 : 최원태의 처 열부 밀양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순조2년 정려하고 2년 후 여각을 세웠다. 밀양박씨는 시부모를 지성으로 공경하고 남편을 섬겼는데, 남편이 죽자 시부모를 생각하여 곡성을 내지 않았으며, 훗날 3년상을 치른 후 몰래 남편따라 목숨을 끊었다. 어사 박문수가 이 사실을 알고 조정에 품신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현재의 비석은 1983년 문중에서 짓골 어귀에 건립한 것이다.
    • 마을의 지명
      • 굴골 - 옛날 어느 태자가 피난을 했다고 하는 바위굴이 있는 골짜기로 보덕암 서남쪽에 있다.
      • 덕골 : 덕골재 밑에 있는 골짜기
      • 덕골재 : 큰말 서남쪽에서 환서리의 덕골로 넘어가는 고개
      • 마잿골 - 보덕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재매기 - 보덕암 서남쪽에서 환서리로 넘어가는 고개
  • 나아(羅兒)리
    • 마을의 자연환경

      나아리는 남쪽은 읍천, 북쪽은 봉길, 서쪽이 나산이며, 동쪽은 바다이다. 서에서 동남으로 생긴 산맥의 陵谷이라 농어업이 대부분이며 해변이 유원지화 되어 있다. 현재는 원자력발전소가 건립되어 옛 모습은 거의 없고 시가지화 되어 상업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 마을의 역사

      장기군 양남면 지역으로, 보리개 옆이 되므로 버릿개, 나아, 내아, 나아지, 나아포, 모포, 모포리 또는 아진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나아리로 하고, 경주군 양남면에 편입되었다.

      • 수아(收兒) : 신라 석탈해를 거두어 들인 곳이라 하여  수아 또는 수애라고 불렀다 하며, 나아천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수남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월성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 장아(長阿) : 석탈해왕이 장성하기까지 자라던 언덕이라하여 장아라 하는데 마을은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헐리었다.
      • 모포(牟浦) : 이 마을에 보리밭이 많고 앞은 포구가 있으며 마을뒤에 작은 고개 가 있어 보릿고개, 보리개, 버릿개라고 부르다가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헐리었다.
      • 송하(松下) : 소나무가 많았고 소나무밭아래에 마을이 이루어져 있으므로 솔밭, 송알, 송하라고 불러 오다가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헐리었다.
    • 마을의 유적
      • 석탈해왕유허비 : 신라 석탈해왕의 탄강지에 세운 비로 조선 고종 때 석씨(昔) 문중에서 세웠는데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542-1번지에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옛날 왜국의 동북 1,000리에 다파나국(多婆那國, 삼국유사에는 용성국)이 있었는데 왕인 함달파왕()가 여국왕(女國王)의 딸을 왕비로 맞아 임신 7년 만에 큰 알을 낳자, 왕은 좋지 못한 일이라 하여 버리게 하였다. 이에 보물과 함께 비단에 싸서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보냈다. 궤짝에 실린 탈해는 금관가야()를 거쳐 계림() 동쪽 아진포()에 이르렀다. 이 때 앞바다에 있는 홈바위에서 해초를 뜯고 있던 한 노파가 해안으로 밀려오는 이상한 궤짝을 발견하고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있는지라 데려와 길렀다. 이때가 혁거세왕 39년이다. 궤짝이 바다에 떠내려 올 때 많은 까치가 울며 따라 왔으므로, 아기의성은 까치작(鵲)자에서 새조(鳥)자를 떼고 석(昔)이라 짓고, 궤에서 벗어났으니 이름을 탈해(脫解)라 하였다. 탈해는 자라면서 신장이 9척이나 되고 학문과 지리를 익혀 인물이 출중하니 남해왕 5년(서기8년)에 부마가 되고, 유리왕의 뒤를 이어 신라4대 왕위에 올랐다.
    • 마을의 지명
      • 동방굴 - 돌이 많은 골짜기로 송하 남쪽에 있다.
      • 딱밭골 - 딱나무 밭이 있는 골짜기로 송하 남쪽에 있다.
      • 지널골 - 땅이 매우 기름진 골짜기로 송하 남쪽에 있다.
      • 홈바우 - 홈이 패어있는 홈돌이라고도 하는 바위로 장아앞 바닷가에 있다.
  • 읍천(邑川)리
    • 마을의 자연환경

      읍천리는 서쪽이 환서, 북쪽이 나아로 동남이 바다이며 완전 해변인데 바위가 해변에 너무 많아 항구 역할이 힘든 곳으로, 1914년 부군통합 당시에 읍천 1리, 2리로 구분되어 지금까지 오고 있으며, 지금은 1종 항구가 들어서 있다.

    • 마을의 역사

      읍천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읍천으로 된 이후 그대로 오고 있다. 미역,전복으로 소득이 증대되고 있다.

      • 죽전(竹田) : 이 마을 서쪽 언덕에 대나무 밭이 있어 죽전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