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傳) 황복사지에서 드러난 신라 왕실사원의 위엄

작성자
공보관
등록일
2018-02-01

내부 출토 금동입불상 및 보살상

경주시(시장 최양식)에서 발주하여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이 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에서 신라 왕실사원의 위엄을 보여주는 대석단(大石壇) 기단 건물지,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기단 건물지와 함께 회랑(回廊, 지붕이 있는 긴 복도)지, 연못 등에서 금동입불상과 보살입상 7점 등 1,0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 발굴현장: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184번지 황복사지 삼층석탑 남쪽 일원
* 대석단(大石壇): 크고 정교하게 가공한 돌로 조성한 건물의 단

황복사(皇福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654년(진덕여왕 8년)에 의상(義湘)대사(625~702)가 29세에 출가한 곳으로, 1942년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황복사탑 사리함(舍利函)에서 확인된 명문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을 통해 신라 왕실의 종묘적 기능을 한 왕실사원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당시 삼층석탑의 해체수리 과정에서 금제여래입상(국보 제79호), 금제여래좌상(국보 제80호)도 확인되어 주목을 받았다.

경주시는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의 허가를 받아 문화재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으로 전(傳) 황복사지(皇福寺址)의 실체 규명과 유적의 보존정비를 위한 1차 발굴조사를 지난 2016년 6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경주시 구황동 100번지 일대의 과수원과 경작지(4,628㎡)를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그 결과, 효성왕(재위 737~742)을 위한 미완성 왕릉과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 도로 등을 확인하였다.

이번 2차 발굴조사는 전 황복사지 삼층석탑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경작지(4,670㎡)를 대상으로 2017년 8월부터 진행했으며, 조사결과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대석단 기단 건물지와 부속 건물지 그리고 회랑 터, 담장 터, 배수로, 도로, 연못 등 신라왕실 사찰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규모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왕실사원의 위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지는 대석단 기단 건물지이다. 서쪽의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에 덧붙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남쪽 면에는 돌을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북쪽 면에는 자연석을 쌓아 약 60m에 이르는 대석단을 구축한 후 전면 중앙부 북쪽에 돌계단을 설치하였다. 대석단 기단 건물지는 내부를 회랑을 돌린 독특한 구조로 이는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은 가람배치 방식이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특수한 용도의 건물이거나 전 황복사지의 중심 건물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는 십이지신상 4구[묘(卯, 토끼),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가 조각된 석재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놓여 있으며, 대석단 건물지와 함께 전 황복사지의 중요 전각지로 보고 있다. 십이지신상은 신라 왕릉에서 확인된 십이지신상 탱석과 비교했을 때 더 발달한 형태를 보이며 김유신묘(사적 제21호)의 십이지신상과 더불어 조각미가 뛰어나다. 이 탱석의 도상(圖像)은 김유신묘와 헌덕왕(809~826) 능의 십이지신상보다 앞서며, 제작 연대는 8세기 중후반으로 추정한다. 축조 당시 십이지신상 탱석은 다른 왕릉에서 옮겨와 건물지의 기단석으로 다시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 탱석(撑石): 면석과 봉토가 붕괴하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돌

한편, 출토된 1,000여 점 이상의 유물은 대부분 토기와 기와이다. 대체로 7∼9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장식이 화려한 신장상 화상석, 치미, 기와 등을 통해 당시 격조 높은 건축물이 들어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금동불입상과 금동보살입상 등 7점의 불상 유물은 전 황복사지가 7~10세기까지 신라 왕실사원으로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
* 신장상(神將像): 부처를 비롯한 불자들을 수호하는 신장(사천왕 등)의 조각상
* 화상석(畫像石): 장식으로 신선, 새, 짐승 따위를 새긴 돌
* 치미(鴟尾): 지붕의 장식기와로, 건물의 용마루 양 끝에 올려 건물의 위엄을 높이고,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함

또한, 1차 조사와 더불어 이번에 확인된 건물의 배치나 도로 등을 볼 때, 낭산의 동쪽에 해당하는 지금의 보문동 지역도 통일신라시대의 도시계획의 하나인 방리제(坊里制,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를 설계)에 의한 계획도시임을 알 수 있다.

이번 2차 발굴조사는 통일신라시대 왕실사원과 신라왕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주시는 문화재청과 함께 앞으로도 황복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유적을 정비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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